의의는 예술작품 속에 있고 작품 때문에 예술이 가치를 갖게 되니 ‘예술’이라는 명칭은 예술가의 솜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해서도 부여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예술은 고대 그리스 이래 서구의 예술 개념을 지탱시켜 온 이러한 속성소조차 과감하게 부정하는 반예술의 예술로 전개되
Ⅰ. 개요
사회과학 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 철학은 생소하고 마치 새로운 언어를 대할 때와 같은 부담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자연과학 영역에서 순수과학이 응용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 역시 인문학적인 토대를 굳건히 할 때 질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비판이론을 개방시킨다. 지배적인 역사를 부정하는 아도르노의 역사철학적인 중요한 논제는 사회비판이론이나 계몽의 변증법 또는 미학이론에서 유사하게 전개된다. 파시즘과의 논쟁을 전개하는 사회비판이론에서는 헤겔적 맑시즘에서 언급되는 상품분석론과의 연관성이 부각된다. 이
아도르노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예술의 지시적 성격, 즉 예술이 역사적 고통의 표현이자 동시에 유토피아적 화해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예술이 지시하는 타자는 예술이전의 타자, 예술외적인 타자, 그리고 유토피아적인 타자를 모두 포괄하며, 이들은 각각 인류
부정당해 왔으므로 후일에 비판당한 면에서 보면 철학은 확실히 오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철학의 애지(愛智)활동이 지닌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부단히 지혜를 탐구하는 노력을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symposium)
Ⅰ. 캇시러의 예술관
캇시러는 예술을 기존의, 이미 주어진 현실(reality)을 한갓 재생, 재현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는 예술을 사물과 인간 생활에 대한 객관적 견해(objective view)에 이르게 하는 여러 방법들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그래서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 현실의 발견(a discovery of reality)이다.
아도르노와 비슷하게 우리의 것들 속에서도 얼마씩 엿보이고 있다. 특정한 한 시대의 특징을 가장 압축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반영해주는 한 수단으로서의 문학의 한 역할을 감안해 볼 때, 이러한 한 시대의 특징과 그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 시대의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상
특정 시대의 현실의 자료로서의 역사라는 것은 그것이 한 세대 지나간 이후의 후손들의 눈에 보기에는 단순한 암기거리나 혹은 그 이상의 미래상을 예측하기 위한 일종의 사료로 받아 들여 질런지 모르겠지만, 후손들의 그 역사를 현재로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한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만들고
Ⅰ. 개요
ꡒ아름다운 예술은ꡓ 결코 현실의 재현이나 진리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적 가상이 아닌, 솔직하고 독립적인 가상을 대상으로 하는 미적 유희 das asthetische Spiel mit dem aufrichtigen und selbstandigen Schein로서 정체성을 지니는 것이다. 예술을 ꡒ미적 유희ꡓ로서 파악하지 않고 그
헤겔 이후의 합리주의적 관념론, 객관성을 강조하는 실증주의, 과학 기술 문명, 제반 관료적 행정 기구, 효율성 및 조직성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의 산업 체제 등에 의해 인간성이 규격화, 객체화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결국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여러 현대적 철학 및